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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기자, 그 외로운 직업

알람없이 늦잠이 허락되는 토요일 오후.

느즈막하게 일어났지만 머리가 무겁다. 아스피린 한 알을 물과 함께 털어놓고는 다시 침대에 걸터 앉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든다.

회식 때 깐족거리던 동료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지 못하는 답답함과 같은 말이라도 참 아무생각 없이 내뱉어 후배를 주눅들게 하는 팀장의 말본새도.

이러니 머리가 아프지 하면서 무거운 걸음을 떼면 시작되는 엄마의 주말 잔소리.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음을 감사해(?)하며 누군가의 슬하에 있다는 것또한 감사해야 하리 하고 정신승리를 한 뒤 빵에 잼을 슥슥 발라 먹는다.

 

기자는 외로운 직업이다.

같은 회사 선배나 동료보다도 어쩌면 타사 선배나 동료들과 더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면서도 오늘 저녁까지 같이 잔을 부딪친 사이의 타사 선배는 그 다음날 나와 나눈 얘기를 회사 내 정보보고에 올린다.

돌고돌아 다시 내 귀에 들어온다. 난 아무렇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러니까.

이런것에 아무렇지 않아하고 무뎌져 가는 내가 어쩐지 서글플 뿐이다. 

 

기사 아이템을 발굴하고 발제해서 그 날의 회의테이블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때부터 외로운 싸움은 더 처절해진다.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취재원, 먼저 설득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동료 또는 선배..

내가 발견하지 못하면 송고 전까지 발견되지 않는 기사 속 옥의 티.

 

기사가 만들어지고 보도된 후 '끝났다'는 시원함은 3초가 전부.

 

또 다른 아이템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거나 때론 보도된 아이템의 후폭풍 반응이 우려돼 식음을 전폐한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선후배가 동료가 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이란 건 옛말.

워낙 적은 인원 속에서, 내 일이 너 일이 되는 것에 심각한 경계를 보이고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이것은 나라 경제가 안좋은 탓일까. 고용시장이 불안정하니 채용시장은 얼어붙고, 그렇다보니 회사는 사람을 덜뽑아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에게 고강도의 업무를 투하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선택받았다고 자위하며 젊은 시절 호시절 그렇게 업무 속에 파묻혀 다 보내고 남는 건 적금과 악화된 내 건강뿐.

 

적금을 깨고 내 병 고치는 데 다 쓰겠지. 육체적 질환이 없다해도 대부분은 정신적 감정을 받아봐야 할 판.

 

모 선배가 언젠가 스치듯 말했던 한 구절이 심각하게 와닿는다.

공수레 공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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